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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교육의 철학과 목표

대학 교양교육이 방향을 상실하고 있습니다
대학은 교양교육의 책임을 재확인하고 목표를 되찾아야 합니다

대학에 들어온 젊은이들이 입학 당시보다 더 성숙한 인간, 더 나은 인간, 더 유용한 인간이 되어 사회로 진출할 수 있게 하는 것―이것은 대학교육의 본질 목적이자 대학이 존재하는 이유이며 사회가 대학에 지워준 기본 책임입니다.

대학에 교양교육이라는 것이 왜 존재하며 교양교육은 무엇을 목표로 하는가? 이것은 대학이 늘 던져야 하는 기본 질문입니다. 그 질문에 대한 응답이 흐릿할 때 교양교육은 방향을 잃고 표류합니다. 지금 국내외 사정을 개괄하면 대학들이 그 질문에 적절히 대응하고 있다고 말하기 어려운 상황들이 전개되고 있고, 이로 인해 대학 교양교육은 심각한 수준에서 표류하고 있습니다. 대학이 학생들에게 1년에서 2년, 혹은 그 이상의 시간을 바쳐 이수하도록 요구하는 것이 교양과정입니다. 그런데 그 교양교육이 나침반을 잃고 표류한다면 그것은 소중한 교육 기회를 허비하고 자원을 낭비하는 일입니다. 대학은 이런 방향상실이 미래 세대의 운명에 어떤 불길한 영향을 끼치고 사회 전체에도 어떤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가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교양교육의 책임

대학의 여러 교육 프로그램 중에서 교양교육은 대학의 존재이유와 목적에 대한 이해가 아직 미약한 초급학년 학부생을 주 대상으로 해서 그가 대학에 왜 들어왔는지, 대학은 무엇 하는 곳이며 그가 대학에서 길러야 하는 가장 중요한 능력은 무엇인지에 관한 방향 잡아주기에서부터 그가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무엇이며 사회와 문명에 지고 있는 책임은 무엇인가, 대학교육을 받은 사람에게 요구되는 것은 무엇인가 같은 질문에의 응답을 탐색하는 일에 이르기까지, 그의 변화와 형성에 불가결한 성숙의 조건들을 최대한 충족시켜 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대학 교양교육의 임무이고 책임입니다. 바로 이런 책임 때문에 대학은 신입생들이 입학 초기부터 한 가지 전공에만 몰입하게 하거나 입학하자마자 취업훈련부터 받게 하는 좁은 교육을 실시하지 않습니다. 대학은 기계를 길러내지 않고 인간을 길러냅니다. 협소성의 포로가 되기를 거부하는 교육이 교양교육입니다. 영혼이 없는 탁월성은 탁월성이 아닙니다.

교양교육의 기본 목표

‘아이가 어른 되는’ 성숙의 조건들은 열아홉 살 청소년에게는 거대한 모험이고 도전입니다. 대학에 들어오면서부터 그는 그때까지 그가 의존해왔던 부모, 학교, 선생님의 긴 영향에서 벗어나 자신의 독립된 ‘정신의 삶’(life of the mind)을 시작해야 합니다. 대학에서 그는 자기가 누구이고 타인은 누구이며 그가 사는 세계는 어떤 곳인지, 자신의 삶을 이끌 가치, 이상, 목적은 어떤 것일 수 있는지를 탐색해야 합니다. 대학 입학과 함께 그는 자신을 책임지고 사회에 대해서도 책임질 준비를 해야 합니다. 정신이 의존상태를 벗어나 독립의 단계로 이동하고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고 여겨졌던 것들에 대해서도 책임을 의식한다는 것은 성숙의 조건들 중에서도 결정적으로 중요한 부분이며 동시에 매우 어려운 부분입니다. 다수의 신입생들이 그 도전을 감당하지 못해 혼란, 방황, 도피에 빠집니다. 이런 혼란과 방황이 장기화되면 4년간의 대학 생활은 큰 타격을 받고 헛되이 공전합니다. 학부생이 대학의 도전에 잘 대응하고 즐겁게 응전하면서 자신을 변모시켜 나갈 수 있도록 이끌고 지원하는 것, 탁월한 개인, 책임있는 시민, 성숙한 공동체 성원의 양성이라는 대학교육의 본질 목적을 교양교육의 차원에서 실현해나가는 것―이것이 교양교육의 기본 목표입니다.

교양교육의 최종 목표

학부생의 성숙을 돕는 일이 교양교육의 기본 목표라면, 교양교육의 최종 목표는 한 인간이 삶의 불확실성 앞에서도 의미 있고 행복한 방식으로 자신의 한 생애를 이끌어 나갈 수 있게 할 내적 견고성의 바탕을 길러주는 데 있습니다. 삶이 안길 수 있는 온갖 어려움과 영욕의 순간에도 한 인간의 삶을 지탱해주고 의미와 가치를 공급해주는 것이 내적 견고성이라는 바탕입니다. 이 바탕이 ‘교양’(culture)입니다. 이 의미의 교양은 한두 해의 교양교정 학점을 따는 것으로 달성되지 않고 대학 졸업장이나 무슨 자격증 같은 것으로 획득되지 않습니다. 교양은 대학 졸업을 위한 한시적 절차도 수단도 아닙니다. 그것은 그 자체로 목적이며, 교육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높이입니다. 대학교육이 지향해야 할 궁극적 가치, 교육의 최종 효과가 교양입니다. 그 교양은 단순 지식이 아닙니다. 대학에서 배운 지식들이 다 잊혀지고 다른 지식들로 대체되어도 여전히 내게 남아 나를 지탱하는 강한 힘, 대학에서 들은 강의의 내용들이 기억에서 사라지고 성공과 영광의 순간들이 다 지나갔을 때에도 여전히 내 몸에 남아 나를 지키는 무형의 자산, 그것이 교양입니다. 세월이 바뀌고 삶의 외적 조건들이 바뀌어도 이 자산은 줄어들지 않고 없어지지 않습니다. 더 성숙한 인간, 더 나은 인간, 더 유용한 인간을 최종적으로 정의해주는 것은 이런 의미의 교양입니다. 예컨대 의사와 변호사와 경영인, 전문가와 정책입안자가 이런 교양의 인간일 때 그들은 분명 더 나은 의사이고 변호사일 것이며 더 나은 경영인, 전문가, 정책입안자일 것입니다. 대학 교양교육은 그 궁극적 목표로서의 교양, 교육의 정점으로서의 교양을 망각할 수 없습니다.

후마니타스 교양교육의 지향점

후마니타스 칼리지는 교양교육의 기본 목표를 바탕에 깔고 그것의 궁극적 목표를 북극성으로 삼아 다음의 다섯 층위에서 후마니타스 교양교육의 지향점들을 설정합니다.

1. 인간, 사회, 자연, 역사에 대한 다각적 이해방식들을 폭넓게 접할 수 있게 하고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을 포함한 여러 학문 분야들을 관심대상, 접근법, 사유원칙들을 기본의 수준에서 이해하게 하는 교육, 생각하는 능력을 키워주어 대학에서 자유롭고 창조적인 탐구활동과 정신 가꾸기를 지속할 수 있게 하는 교육의 지향

2. 온갖 정보와 지식, 상충하는 진리 주장들, 상이한 가치관, 경쟁적 주장과 의견 등을 이성적으로 검토하여 오류와 편견을 가려내고 옳고 그름을 판단할 능력을 길러주는 교육, 의미 있는 질문을 던지고 중요한 문제들을 찾아내며 합리적 설명, 타당한 주장, 설득력 있는 해석을 추구할 능력을 길러주고 과학적 사고습관과 비판적 사고력을 함양하는 교육의 지향

3. 성찰의 능력과 습관을 길러주고 자기 자신에 대한 책임과 사회에 대한 책임을 알게 하는 교육, 사적 이익과 공적 이익을 분별할 힘을 키워주며 자신이 사는 사회의 민주적 원칙들을 지키고 발전시킬 시민적 역량들을 터득하게 하는 교육, 계층과 신분, 종교, 지역, 성차 등의 벽을 넘어 타자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이해하는 능력, 선의와 배려와 공감의 공동체적 가치들을 체득하게 하고 사회봉사의 정신을 길러주는 교육의 지향

4. 유연한 상상력, 열린 정신, 지구사회적 마음가짐으로 두려움 없이 변화와 위기에 대응하고 문제를 선도적으로 해결할 힘을 길러주는 교육, 국제사회와 협력하고 세계의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다양성과 서로 다른 역사적 경험들에 대한 이해를 넓혀 인류 공통의 관심사를 인지함과 동시에 국적, 인종, 집단의 울타리를 넘어 지구사회 공통의 문제들을 풀어갈 세계 시민적 역량을 길러 주는 교육의 지향

5. 사건, 현장, 상징, 텍스트를 정확히 읽고 의미와 해석을 구성해내는 능력, 문서 생산력, 아름다운 것을 인지하고 평가하는 심미적 교감과 표현의 능력, 예술을 이해하고 사랑하며 예술적 창조성을 존중하는 능력, 기억할 것을 기억하고 사회의 역사적 경험들을 공유하며 좋은 이야기의 사회적 유통을 촉진할 소통과 전달의 능력, 새로운 기술매체들을 유효하게 사용할 문화적 능력을 함양하는 교육의 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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